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을 위한 대안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독일을 위한 대안 로고(2013-2017).svg|width=300]] 창당 때부터 [[2017년]]까지 사용한 로고 [[2013년]] [[제18대 독일 연방하원 선거]]에서 유로존 탈퇴 공약을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지만 비례대표 4.7% 득표로 근소한 차이로 연방 하원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후 반난민·반이민·종교 근본주의 세력이 집단으로 입당하면서 기존 세력이 밀려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초창기 이 정당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현재 거의 탈당한 상황. 결과적으로 이민자 문제나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등 전통보수적 가치를 내걸어 지지층을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던 기민련 성향 당원들이 반발하기도 했고, 창당 주역 중 한 명인 함부르크대 경제학과의 베른트 루커 교수가 2015년 7월 탈당한 것을 기점으로 [[http://news.joins.com/article/19973145|창당 당시의 반EU연합 노선이 반난민·반이슬람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는 평가가 있다. 2013년 총선에서 기존정당을 위협한다는 평가를 받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에서 200만표나 받았지만 4.7%의 지지율로 원내진입에는 실패했다.[* 독일에서는 비례대표에서 5% 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에서 3석 이상을 얻어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는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반[[유로]] 정서를 타고 선전하여 독일에 배당된 전체 의석 96석 중 7석을 확보했다. 2014~2015년에 치뤄진 지역선거에서 [[헤센]]을 제외한 [[작센]]·[[튀링겐]]·[[브란덴부르크]]·[[함부르크]]·[[브레멘]]에서 주의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특히 구(舊)동독 '''작센·튀링겐·브란덴부르크는 10%내외의 득표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페기다]]와 연합하고 나서 [[유럽 난민 사태|독일의 이슬람계 난민 사태]]에 따라 지지율이 변하는 추세. 2014년 말 페기다가 결성되었을 때 반짝 지지율이 올라 여론조사에서 최고 13%까지 찍었으나, 그 이후 3~4%로 하락했다가, 다시 2015년 후반들어 난민 수가 급증함에 따라 지지율이 다시 8%까지 급등하였다. 2016년 1월 기준으로는 9~11% 정도. 이 과정에서 우경화에 대한 반발로 진보와 개혁 연합이 분당되었다. 사실 기존 기성 정치계에서 대안당에 안일한 태도를 취했던 건 총선은 멀고 일단 유로화 사태가 진정되면 반유로 정당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 독일을 위한 대안은 금새 우파 포퓰리스트 노선으로 갈아탔고 타이밍 좋게 터진 [[유럽 난민 사태]]로 인해 두번째 기회를 잡게 되었다. 결정적으론 [[2016년 유럽 난민 성폭행 사건|유럽 난민 집단 성폭력 사태]]로 인해 불거진 반이민주의로 전국 지지율이 10%대 위로 올랐다. 이런 현상은 유럽 전역에서 반이민주의가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단순 현상쯤으로 치부 할 일은 아니다. 유럽 전역에서 반이민 정서는 단순 극우의 주장뿐이 아니라 일자리 문제와 문화적 문제를 명분으로 일어나고 있다. 독일은 나치의 기억 때문에 타국보다 늦게 이런 주장이 나왔을 뿐이지 다른 유럽국가들에선 반이민정서, 반유로주의가 기존정당 지지율을 잠식하자 기존정당들도 어느 정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 집권당 메르켈 정부는 반이민 반난민 정서를 고려하여 2015년 89만명의 난민 수용 정원을 2016년 28만으로 대폭 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